이 글을 시작하며
AI가 디자인을 대체한다는 얘기가 흔해진 지금, 디자이너에게 ‘실력(Skill)’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피그마, 포토샵 같은 도구를 잘 다루는 것? 아니면 그 너머의 무언가일까요? 디자이너로 일하며 느낀, 도구·본질·AI 시대의 디자이너 역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디자이너에게 툴(도구)이란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미술이나 특수한 분야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진짜 의미가 장인은 [어떤 도구든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도구가 주어지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아는 사람]이라는 뜻임을 알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도구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좋은 도구도 장인의 손에 쥐어졌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개념은 디자인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피그마,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도구를 잘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뒷받침되어야 그 도구가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툴은 설계한 것을 구현해 주는 수단일 뿐입니다. 도구만 잘 다룬다고 멋진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표현력 있는 디자이너, 실력 있는 디자이너는 피그마나 포토샵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 너머의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디자이너의 본질
지난 GUI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모든 배움의 시작은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Designare(데시그나레)”에서 비롯됩니다. Designare: ‘밖으로(de-)’와 ‘표시하다(signare)’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signare는 ‘기호·표시’를 뜻하는 명사 signum에서 나온 동사로, “표시하다, 지정하다”라는 뜻에서 출발해 훗날 “계획하다, 설계하다”의 의미로 확장되었습니다. 즉, 디자이너는 설계자입니다.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자신의 디자인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설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툴로 만든 이미지는 기획하고 설계한 것을 클라이언트와 사용자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이쁘기만 한 디자인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자주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디자이너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그것이 디자인의 전부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AI 디자이너의 역할은 어떻게 바뀔까
요즘 “AI만 잘 쓰면 디자인은 뚝딱이다”, “디자이너가 없어도 된다”는 말을 자주 접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결국 툴 조작에만 의존하는 디자이너가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이제 툴 조작은 AI가 더 잘하게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디자이너의 역할은 포토샵이나 피그마 같은 툴을 직접 다루는 일에서, 큰 그림을 보고 설계하고 스토리텔링을 하며, AI를 활용해 그것을 구체화하는 일로 옮겨가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디자인 시장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오고 있음을 실감하는 동시에 오히려 저는 이 변화가 디자이너가 비로소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시대의 시작이라고 느낍니다.
이렇게 글을 쭉 쓰다보니 제가 AI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사실 AI에 마냥 호의적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하하.. 마치 19세기 후반, 산업화에 반발해 장인정신을 외치던 미술공예운동의 사람들처럼 말이죠. (위에 올린 이미지는 미술 공예운동을 주도한 윌리엄 모리스 입니다)
사진기가 발명되어 그냥 버튼 한 번 누르면 풍경을 담아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림이라는 영역의 가치가 존중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효율”적이지는 않지만요. 근데 그 효율이라는 것으로만 소비 시장이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AI가 빛을 발하는 곳도 분명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영역 또한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글을 마치며
구구절절 많은 글을 적어냈지만 정리하자면, 디자이너의 진짜 스킬은 도구를 다루는 능력이 아니라 설계하고, 판단하고, 방향을 잡는 사고력입니다. AI 시대일수록 이 본질은 더 중요해집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가 실제로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디렉션을 주는지 구체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